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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관념적인 화풍을 파괴한 혁신가 - 카라바조(Caravag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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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37]

관념적인 화풍을 파괴한 혁신가 - 카라바조(Caravaggio)  

17세기는 회화가 중심이 되었던 바로크 시대로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탈리아의 카라바조(Caravaggio), 플랑드르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네덜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스페인의 벨라스케즈(Velazquez)와 프랑스의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등이 있다. 17세기에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시작을 알린 화가는  바로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1~1610)는 이탈리아 카라바조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였으나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이름이어서 태어난 곳인 카라바조를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가 어렸을 때 겪은 가족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그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 특징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시각에 주목하여 생생한 현실감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그리지 않은 최초의 것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그가 사용한 회화기법인 테네브리즘(Tenebrism)은 17세기 회화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명암대조법은 어둠을 의미하는 테네브로소(tenebroso)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테네브리즘으로 그림의 중심인 인물에게만 빛을 비추고 나머지는 모두 어둠 속에 잠겨 있도록 그리는 방법이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명의 연출방식을 회화에 적용한 것이다. 이 덕분에 감상자는 오직 사건에만 집중하여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더해 그림은 한 편의 시와 강력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성모의 죽음 (1601~1605, 369x254㎝) ,  루브르   박물관

오늘 감상하는 카라바조의 작품 ‘성모의 죽음(1601~1605)’은 성모 신앙을 중시하는 ‘맨발의 카르멜리테스 수도회’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위쪽 측면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은 극적인 행위로 가득 찬 장면이며 깊은 종교 정신이 일상적인 삶으로 스며들도록 표현했다. 이 그림에서 성모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천사는 없고 불길한 붉은 커튼이 그림 위에서 꿈틀거린다. 성인들도 여느 장례식의 조문객들처럼 슬픈 표정의 얼굴을 가리며 울고 있다. 고개 숙인 막달레나 마리아 앞의 세숫대야는 구체적으로 시신을 씻기는 장례절차를 암시한다. 기에는 구원은 없다. 기존의 이상적인 마리아가 아닌 살진 몸과 맨발을 드러내고 팔을 벌리고 있는 채로 누워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서 평범한 마리아를 묘사하여 심각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결국, 부활의 ‘신성함’을 담지 못한 이 작품은 당연히 철거되었다. 전통적으로 예수와 기독교 성인들의 몸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선 부활하는 몸, 인간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성한 몸이었다. 17세기에 신교와 구교의 갈등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종교적인 열정과 영적 경험을 증명하는 도구로 그림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에 매료되었다. 무슨 이유일까?  카라바조는 인간의 육체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의 성인들은 소박한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카라바조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근대 사실주의 회화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이글에 실린 명화는 ‘리디아의 예술이야기’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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