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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동방박사의 행렬인가? 메디치 가문의 행렬인가?

[미술의 역사16]

동방박사의 행렬인가? 메디치 가문의 행렬인가?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융합의 시대이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기술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폭넓은 사고의 지평과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인본주의)이 결합해야한다고  강조하며 우리의 삶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와도 의미가 통한다. 메디치 효과란 다양한 영역과 다른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생각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현상을 말한다.  메디치의 어원은 문화예술, 정치, 경제 등 유럽 사회 전반에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게 이끌었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말한다.  메디치 가문은 1400년부터 1748, 350년간 13세대에 걸쳐 피렌체공화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으며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인류의 걸작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오늘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메디치 궁에 그렸던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행렬> 감상해보자.

베노초   고촐리  (Benezzo  Gozzoli),   동방   박사 들의   행렬 ,1460

메디치 가문의 수장 코시모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은행 사업을 유럽으로 확대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였고, 인문학자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연구할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여  르네상스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의 아들인 피에로 메디치(Piero de Medici, 1420-1503) 예술후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메디치 궁에 벽화로 그려진 작품은 명의 동방박사가 각각 명씩 하나의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성경이나 전설에는 동방박사들이 이렇게 화려한  행렬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동쪽 벽에는 젊은 로렌초를 위시한 메디치 가문 사람들, 남쪽 벽에는 중년의 멜키오르, 서쪽 벽에는 노년의 카스파르가 그려졌다. 특히, 동쪽의 벽면에 그려진 세 명의 동방박사 가장 젊은 왕이

화려하게 장식된 흰말을 타고 있다. 이 젊은 왕이 바로 피에로 데 메디치의 아들,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이다. 당시 로렌초는  열 살이었는데 청년모습으로 관람객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로렌초 뒤로 빨간 모자를 쓰고 흰말을 탄 사람이 바로 로렌초의 아버지 피에로이고 그 뒤로 검은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식의 갈색 말을 탄 사람이 바로 로렌초의 할아버지 코시모 데 메디치이다. 화면 뒤  언덕 꼭대기에 피렌체의 상징인 베키오 궁이 보인다. 그들의 행렬 목적지는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이 아닌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메디치 궁의 동방박사 행렬에 동로마제국 황제와 동방교회 대주교와 함께 메디치 사람들을 그린 이유는 당시 분열된 동서 로마 교회가 함께 피렌체에서 1439 공의회를 개최하는데

메디치 가문이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의 노력 결실로 훗날에 로렌초의 둘째 아들 조반디 메디치(Giovanni de Medici, 1475~1523)  교황 레오 10세가 되었다.  메디치 궁의 벽에 그려 넣은 <동방박사의 행렬> 메디치 가문의 업적을 기념하는<메디치가의 행렬> 인 것이다. 더불어 이곳 피렌체는 새로운 생각, 아름다움의 재발견과 인간 중심의 시선으로 바꾸어 놓은 거대한 흐름, 즉 르네상스가 발원하고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꽃피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