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이야기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미술의 역사14]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예술의 영역은 매우 다양하므로 지구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용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필자는 멜번으로 이민 온후에 별도의 미술 재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컴퓨터 디자인작업과 일러스트 연필 드로잉 작업을 주로 했다. 지금 멜번은 긴 여름이 지나고 바야흐로 가을, 가을비가 내린 후 땅에서 모락모락 고향냄새가 올라오면서 유화 냄새가 다시 그리워졌고, 붓에 물감을 찍어 캔버스에 한 터치씩 새로운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다. 어쩌면 나의 삶의 관심 사는 바로 예술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유화는 색을 내는 물질인 안료와 아마씨유에서 추출한 린시드 오일을 사용한다. 이러한 유화는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전 얀 반 에이크의  실험 정신으로 기름을 섞은 안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유화로 발전되었다.

오늘은  15세기 네덜란드화가인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감상해보자.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1434 년 )

이 그림은 1434 초기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  오크 화판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이다. 이전에는 계란 노른자를 용매로 템페라 기법과 마르지 않은 석회벽에 채색하는 프레스코 기법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에이크기름을 용매로 사용한 유화 기법을 창안했다. 이 그림은 상인계급의 첫 초상화이자 사생활을 담아낸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템페라 대신 유화 물감을 쓴 그림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그림이다. 특히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의 모델 전신을 그려놓은 초상화이며 여러 가지 상징이 들어간 가장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그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배경의 방은 플랑드르의 브루제에 위치한 그들의 저택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배경삼은 가정공동체에는 부부의 역할 분담과 결혼에 대한 통념이 드러나 있다. 촛불, 신발 ,거울, 창밖, 묵주, 조각,강아지 등이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들레에 위에 있는 촛불은 신랑쪽에만 하나가 켜져있다. 왜 일까? 이 그림은 부인이 1433년 세상을 떠난후 결혼 회고록 처럼 그린 초상화다. 신랑 발옆에 놓인 벗져져있는 신발은 결혼 즉 새로운 시작이라는 상징이다. 한편 창밖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체리나무와 창문아래 테이블에는 오렌지가 놓여있다.벽에 크리스탈 묵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덕성을 상징하여 신부에게 이런 덕목을 요구하는 것이다. 침대 헤드위에는 용을 밟고 있는 여인의 조각은 출산을 도와주는 수호성인인 성 마르가리타로 보인다. 아래에 있는 강아지는 상대방에 대한 성실성과 변치 않는 애정의 약조를 의미한다. 부부의 뒤쪽에 있는 볼록거울에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고, 윗부분 벽에는 라틴어로 'Johannes de Eyck fuit hip. 1434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 1434)’라고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써넣었다. 이렇듯 얀 반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하는 실험정신과 이 초상화에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은 신의 중심에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음을 대범하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