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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미술의 역사15]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비통함(Anguish)이란 자신의 마음과 가까운 주위의 환경 때문에 감정이 매우 고통스럽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아픔과 고뇌를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강력한 고통을 경험하곤 한다. 기독교 미술에서 고통스럽고 가장 처절하게 나타난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Crucifixion)’를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비통함을 이기지 못해 혼절한 성모마리아, 그의 발밑으로 무릎을 꿇고 슬픔에 울부짖는 막달라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오늘 감상할 작품은 1515년경, 독일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0 - 1528)에 의해 그려진 ‘이젠하임 제단화’이다.

The Isenheim Altarpiece, 1515. The Unterlinden Museum, Colmar, France.

이젠하임 제단화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에 이르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독일의 이젠하임의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 병원의 의뢰로 제작되어 중앙의 패널, 그리고 창문처럼 여닫을 수 있는 양쪽 날개로 이루어진 제단화로서 여러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다.
배경은 어둡고 황량한 벌판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가시관을 쓰고 굵은 못이 박혀있는 손과 발은 참기 힘든 고통으로 뒤틀린 자세로 매달려 있다. 십자가의 양쪽이 몸의 무게로 휘어져 있으며, 고통을 신음한 입은 반쯤 열려 있다. 못이 박힌 손가락은 갈라져 위로 향해 뻗치고 있으며 싸늘하게 푸른 빛으로 변해가는 예수님의 몸과 그 위에 수많은 상처가 참혹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사도 요한과 강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양과 세례 요한이 있는데 그의 손가락은 고통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동시에 빨간색의 라틴어로 쓰여진 성서의 한구절을 읽게한다. 바로 요한복음 3장 30절의 “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가 라틴어로 쓰여있다.

그 당시 제단화 제작를 의뢰했던 성 안토니 수도원의 병원에는 피부가 썩는 병을 앓는 환자들인 괴저병·한센병 환자들, 그리고 1490년대부터 유럽에 많이 퍼지기 시작한 매독 환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쳐오는 아픔과 고난을 절망한다. 당시에는 환자들의 극한 고통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정신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여러 미술학자들은 ‘너의 고통에 매몰되기 전에 예수님이 겪으신 수난을 보아라, 그리고 그가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보아라. 그뤼네발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추측했다.

이 제단화는 여러 그림이 겹쳐져 있는데 중앙 부분을 열면, 그 안쪽에는 예수 탄생과 부활의 장면이 밝은 분위기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비통해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로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