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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장 푸케의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성모자(聖母子)’

[미술의 역사22]

장 푸케의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성모자(聖母子)’                   

중세 말기에 마리아는 구원의 여신으로서, 마리아 숭배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유행했다마리아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작가는 프랑스의 독창적인 화가 장 푸케(1420~1481)이다. 푸케는 15세기 중반에 프랑스 국가의 기록화가 이자 왕실 초상화가를 지냈다. 그는 한동안 이탈리아를 방문해 남부 르네상스와 북부 르네상스의 전통을 융합한 그림을 그려 새로운 조형 언어인 인문주의적 회화표현을 프랑스에 발전시켰다.

장 푸케, Virgin and Child Surrounded by Angels,  1452년 , 목판에 템페라, 93×85㎝,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소장.

오늘 소개할 장 푸케의 작품인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성모자(聖母子)’ 우리가 자주 보았던 성모 마리아 모습과 사뭇 다른 느낌이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도가 지나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너무 현대적인 작품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1452년에 제작된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15세기의 이탈리아 화가들 몇 명이 마리아의 몸을 풍성하게 그렸는데, 이 그림은 아마도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델은 프랑스 국왕인 샤를 7세가 사랑하고 아끼던 후궁, 아그네스 소렐(Agnès Sorel)이다. 밤을 상징하는 파란 천사와 낮을 상징하는 빨강 천사에 둘러싸인 옥좌 앞에서 한쪽 가슴을 드러낸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성스럽기보다는 관능적이다. 이 그림은 그녀가 죽은 지 2년 뒤, 죽은 여인을 그리워하는 왕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려졌다.

차갑게 느껴지는 그림 속의 하얀 피부는 아그네스 소렐이 지상의 여인이 아닌 천상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그리고 별 모양의 왕관, 흰색 피부, 옥좌를 장식하는 진주는 천상의 여왕인 마리아의 역할을 가리킨다. 흰 모피를 어깨에 두른 채 황금빛 권좌에 앉아 풍만한 가슴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투명한 베일에 싸인 그녀의 볼록한 이마는 이 시기에 유행한 스타일이었다. 그 당시에 열린 호화로운 궁전 축제에서 샤를 7세는 소렐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매혹됐으며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그녀에게 엄청난 재산과 땅을 하사했고, 나아가 왕비의 지위까지 부여했다. 국왕이 정부(情婦)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프랑스에서 처음 있는 일로, 이후 프랑스 국왕이나 귀족들은 정부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치는 국민을 자극하고 분개하게 했다. 게다가 그녀는 샤를 7세의 딸 셋을 낳고 28세에 넷째 아이를 낳은 직후에 이질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훗날 샤를 7세의 아들인 루이 11세가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그네스 소렐을 제거하기 위해 독살했다는 추측이 나돌기도 하였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인 샤를 7세의 정부 아그네스 소렐의 이야기는 예술과 성 그리고 정치가 밀접하게 관련됨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