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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한스 홀바인 ‘영국왕 헨리 8세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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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 32]

한스 홀바인 영국왕 헨리 8세 초상

과학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한 시대에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향후의 방향성을 예측할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재의 기술을 정확히 바라보로봇 및 인공지능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인가를 질문하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변화하는 현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간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기적으로 거대한 변혁이 일어났었고, 서양문명에서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영국은 오랫동안 지속한 내란으로 인해 유럽의 변방 국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으나 엘리자베스 1세가 내란을 평정한 후 영국의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인 헨리 8세의 초상화이다. 헨리 8세는 영국 역사에서 손꼽힐 만큼 지적이고 유능한 군주였지만 여섯 명의 왕비 중 두 명이나 처형을 서슴지 않았잔인한 왕으로도 알려졌다. 그러한 헨리 8세는 절대왕정 시대를 만들기 위해 백성과 귀족들에게 항상 자신의 힘과 재력을 보여줘야 했다.

  한스 홀바인  ‘헨리 8세 초상’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이 그림은 왕의 전속 화가인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의 초상화이다. 독일인이었던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 1497년~1543년)은 화가이자 이름이 같았던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부였던 스위스 바젤에서 미술 유학을 한 후, 런던에서 헨리 8세에게 인정받았다. 이때 헨리 8세는 홀바인의 그림에 매료되어 궁정화가로 두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이 초상화는 클레베스의 앤과 네 번째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만든 호화로운 의복을 입고 있는  헨리 8세 모습이다. 그림 속에서 헨리8세 왕의 모습은 어깨가 잔뜩 부푼 소매와 장식이 화려한 옷으로 원래의 체격보다 과장된 옷을 입고 마음껏 한다. 웃지 않는 얼굴로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하여 왕의 권위를 나타냈다.  초상화에서 헨리 8세는 바람둥이라기보다는 범접할 수 없는 위풍당당 자신감을 뿜어내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헨리  8세는 새로운 왕비를 맞이하기 위해, 왕비 후보로 염두에 덴마크의 왕녀와 독일 공작  클레베스의 딸에게 홀바인을 보내 그녀들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다. 그림을 헨리 8세는 사람 중 클레베스의 앤이 맘에 들어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실제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헨리8세는 결국 또 이혼한다.  앤을 그렸던 홀바인은 이 사건으로 인해 궁정화가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홀바인은 페스트로 사망할 때까지 영국에서 화가로서 계속 활동하였다. 홀바인의 초상화 작품은 모델의 심리적인 통찰력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징물을 조화롭게 배치함과 동시에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나 초상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 이글에 실린 명화는 리디아의 예술이야기유튜브 채널에서 감상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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